목회칼럼

추수 감사주일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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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1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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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년 9월16일 102명의 청교도들은

Mayflower 호에 몸을 싣고 영국으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찾아 항해를 시작하였습니다.

두 달이 조금 넘는 긴 고난의 항해 끝에

지금의 미국 동해안 메사추세츠의

플리머스에 도착하였지만,

너무 오랜 항해로 지치고,

굶주리다가 질병을 얻어서

결국 절반 이상이 생명을 잃고 맙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경과 고난의 비극 속에서도

저들은 다음해 가을, 먼저 하나님의 집을 짓고

농사의 첫 수확을 거두어들였습니다.

그리고 이 수확으로 인해

하나님께 드린 감사의 제단이

오늘날 미국 건국의 주춧돌이 되었고,

교회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가장 큰 절기 중 하나인

추수 감사절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실과 달리

처음 청교도들이 이 대륙에 와서

추수 감사 예배를 드렸을 때는 결코 첫 수확이

풍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수확은 그들이 겨울을 지내기에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원주민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고생하고 많은 사람이 죽고

수확이 너무나 적었기에 수확의 결과로만 본다면

결코 감사할 조건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그들의

절대적인 감사의 대상이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늘 결과만 보고 만족하여 감사하는 감사는

진정한 감사도 아니고,

상대와 끊임없이 비교하며 비교하는 감사도 아닙니다.

물론 이 두 가지의 모습도

우리의 감사의 조건에 어느 정도 들어가지만,

 지나치면 기복신앙과 교만한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결과주의적 감사”, “상대주의적 감사”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균형이 깨진 반쪽짜리 감사입니다.

결과 주의적 감사는

무조건 좋은 결과를 놓고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을 기복 주의로만 만듭니다.

 

또 하나는 지나친 상대주의적 감사입니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위로를 받고 삶을 새롭게 결단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비교를 해서 “나는 이렇게 축복을 해주셨구나”로

늘 자만에 빠지는 것도 온전한 감사는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성경적 감사는

절대감사입니다.

성숙한 자녀들은 부모님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셔서 감사를 하기도 하지만,

그냥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그 자체,

아니 그것 아니더라도 내 존재를

있게 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절대감사는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나의 모든 죽을 죄를 용서하시고,

나에게 영원하고 새로운 생명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부터 시작됩니다.

 이 구원에 대한 감사가

모든 감사의 근본이 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신앙의 밑바탕에

이 구원에 대한 감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 감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내 인생의 구원자 되신

하나님 앞에 최고의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내가 드리는 헌금도 최고,

내가 드리는 찬양과 경배도 최고,

말씀을 듣는 자세도 최고,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도 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최고,

왜냐하면 내가 예배하는 그 하나님께서

최고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최고의 예배를 최고의 하나님께

날마다 드리는 브릿지 성신교회 공동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안에서 여러분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